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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 관점에서 본 옥자 (자본주의, 동물, 산업)

by 1to3nbs 2025.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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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시설 안에 갇힌 돼지 사진
공장식 축산시설 안에 갇힌 돼지 사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거대한 글로벌 자본주의와 인간 중심의 산업사회가 동물이라는 타자에게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예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단순한 모험극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소비 시스템과 생명윤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산업 시스템 속에서 동물의 생명을 지배하고 조작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현실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했는지를 철저히 묻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생명윤리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옥자》를 다시 읽어보고 자본주의, 동물권, 산업의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우리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자본주의가 만든 생명 상품화 구조

자본주의 체제는 생명을 어떻게 다루는가? 《옥자》의 세계에서 초국적 기업 미란도는 '슈퍼돼지'라는 이름의 생명체를 개발해 대중에게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식량 자원'이라고 포장한다. 마치 진보적이고 윤리적인 미래 식품인 양 보이지만, 실상은 이윤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저한 기업 논리가 숨어 있다. 이 과정에서 생명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기보다는 '팔 수 있는 가치'로 전환된다. 이런 맥락에서 옥자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옥자는 기업의 브랜딩, 실험실 기술력, 소비자의 식탁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자본 흐름의 결과물이다. 마치 상품처럼 설계되고 운송되고 거래되는 옥자의 삶은, 생명이 어떻게 자본의 논리 속에서 구조화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핵심 장면 중 하나는, 대기업이 식품 엑스포에서 슈퍼돼지를 홍보하며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를 자극하는 대목이다. 마치 기업이 선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뒤편에는 철창 속에서 울부짖는 수많은 옥자들이 존재한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하는가?’

생명윤리의 핵심은 바로 이런 질문에 있다. 인간의 경제적 편의나 욕망이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침해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이 있는가? 옥자를 상품화하는 구조를 통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생명을 ‘가격화’하는지를 고발하며, 그 시스템에 동참하는 소비자의 윤리적 책임 또한 피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동물권과 인간 중심주의의 충돌

《옥자》의 서사는 미자라는 한 소녀와 옥자라는 거대한 동물 간의 유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나 감정적 애착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의 존재론적 관계, 즉 ‘인간 중심주의’라는 오래된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인간 중심주의는 오랜 시간 서양 철학과 과학을 지배해 온 관점으로, 인간을 자연과 동물 위에 두고 나머지를 통제와 활용의 대상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현대 생명윤리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경계를 다시 묻는다. 동물도 감정과 지능을 지닌 존재이며, 고통을 느끼는 주체라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옥자는 영화 전반에서 단순히 ‘먹을거리’로 그려지지 않는다. 옥자는 슬퍼하고, 기뻐하고, 미자와 교감하며, 탈출을 시도한다. 그녀는 ‘인간 아닌 존재’가 아니라, ‘또 다른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동물권 담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동물은 도구가 아닌 주체이며,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영화는 힘을 싣는다.

특히 도축장 장면은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옥자가 비명을 지르고, 다른 슈퍼돼지들과 강제로 분리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객관적인 관찰자가 아니다. 우리의 감정이 흔들리는 그 순간이야말로, 영화가 요구하는 윤리적 자각의 출발점이다. 동물권은 인간이 자각함으로써 생겨나는 법적 권리가 아니라, 이미 동물 스스로 존재로서 지니는 자연적 권리이며, 인간은 단지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철학적 입장과 맞닿는다.

산업 시스템의 익명성과 윤리적 무감각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은 점점 더 분업화되고 거대화된다. 이 시스템 속에서 개별 인간은 점차 자신이 하는 행위가 전체 시스템에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 감각하지 못한다. 《옥자》는 이러한 ‘산업의 익명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란도사의 식품 공장은 그 자체로 생명윤리의 실험실이다. 각 부서는 분리되어 있고,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그 누구도 ‘내가 생명을 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 구조는 윤리적 책임을 개별 주체가 아닌 시스템 전체로 이전시키며, 개인의 도덕적 회피를 용이하게 만든다.

《옥자》의 가장 불편하면서도 중요한 장면은 바로 이 시스템이 아무렇지 않게 작동하는 장면들이다. 옥자가 포획되어 실험실로 이송되고, 공장에서 처리될 때까지 수많은 사람이 관여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이게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바로 그 무감각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윤리적 문제임을 지적한다.

‘구조적 악’이라는 개념이 여기에 적절하다. 사회 구조 자체가 비윤리적일 때, 개인은 죄책감 없이 그 구조에 참여하게 된다. 생명윤리는 이러한 구조를 해체하고, 개인의 윤리적 각성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영화는 미자의 결단을 통해 이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시스템 속에서도 인간은 선택할 수 있으며, 변화는 작은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함을 암시한다.

《옥자》는 단순히 감성적인 동물 구출 스토리를 넘어, 자본주의와 생명윤리, 인간 중심주의, 산업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성찰을 담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고기의 이면에 어떤 구조가 작동하고 있으며, 그 구조가 타자의 생명을 어떻게 희생시키는지를 묻는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말 아무 책임이 없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생명윤리는 고상한 철학이 아니라,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외면했는지에 관한 삶의 방식이다. 《옥자》를 본 지금,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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