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는 단지 극적인 구조 장면이나 감정 자극을 위한 장르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사회 구조의 민낯, 정부의 위기 대응 태도, 그리고 인간의 본능과 공동체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영화 <터널>은 한국형 재난영화의 대표작으로, 붕괴된 터널 속 생존자와 터널 밖 사회의 온도차를 통해 ‘국가 vs 시민’이라는 대조적인 대응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터널>을 통해 드러나는 시민의 생존 의지, 정부의 구조 시스템, 그리고 우리가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깊은 질문들을 정리해 봅니다.
🚧 시민의 본능과 연대 – 절망 속에서도 놓지 않는 인간다움
영화 <터널>의 주인공 정수는 예기치 못한 터널 붕괴 사고로 차량과 함께 매몰됩니다. 구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35일이며, 그 안에서 그는 물 한 병과 생일 케이크, 휴대폰 배터리 몇 퍼센트만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그는 단지 생존하기 위한 본능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간에 만난 또 다른 생존자 김대경과의 연대 장면은 극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시민적 본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행동은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인간다운 품위와 공동체 의식을 포기하지 않는 ‘시민’의 태도를 대변합니다. 반면 구조 지연, 무관심한 정부 대응, 언론의 상업적 접근은 정수를 더 외롭게 만듭니다. 그는 "정말 나를 구하고 있긴 한 걸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며,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상황을 이겨내는 능동적인 존재로 재조명됩니다. 이 영화는 단지 생존 드라마가 아니라, 재난 속 인간성의 회복과 시민의 의지를 강조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정수가 물을 나눠주는 장면, 구조요청보다 동료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순간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이처럼 <터널>은 절망의 공간에서 피어나는 시민의 용기와 연대 본능을 감동적으로 묘사합니다.
🏛️ 정부와 시스템의 대응 – 무감각한 국가, 계산된 구조
영화 <터널>이 가장 날카롭게 그려내는 대상은 정부입니다. 재난 발생 직후 정부는 신속히 대책본부를 꾸리고 현장을 통제하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응은 보여주기식 행사와 비효율적인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예산 문제, 정치적 유불리, 경제적 손익이 구조보다 우선시 되며, 생존자 구조보다 터널 복구와 공사 재개가 더 시급한 사안으로 떠오릅니다. 특히 구조 책임자인 대책본부장은 초반에는 사명감 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여론과 지시 속에서 점점 무뎌진 결정을 내리는 인물로 변화합니다. 이 모습은 단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위기 상황 속에서 정부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의 생명보다 시스템 효율을 우선시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설정입니다. 영화는 특정 정권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라는 조직이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기능적으로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터널 속 생존자는 점점 잊혀지고, 미디어는 초반의 구조 관심에서 점차 피로감으로 바뀌며 희생자에게 책임을 돌리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공권력과 언론, 대중의 무관심이 어떻게 위기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결국 터널 안의 정수를 끝까지 지킨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몇몇 개인의 양심과 집념이었음을 통해 국가의 책임 부재를 강하게 꼬집습니다.
❓ 시민과 국가는 왜 이렇게 다를까 – 영화가 던지는 질문
영화 <터널>이 가장 묵직하게 던지는 질문은 "한 사람의 생명은 국가에 어떤 의미인가?"입니다. 정수는 한 명의 국민이자 시민으로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싸웁니다. 그는 극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인간적인 가치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국가는 예산, 경제, 여론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생명을 수치화하고,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대비는 단지 극적인 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사회가 위기 상황을 맞았을 때, 과연 정부와 언론, 대중은 끝까지 한 사람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정답 대신, 불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정수가 터널 안에서 고립되어 있을 때, 밖에서는 구조보다 복구, 생명보다 정치가 우선되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심지어 언론은 정수를 비난하기까지 하며, 사회 전체가 피로감을 이유로 개인을 포기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국가 시스템이 개인의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자아냅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시민과 국가의 간극을 정확히 보여주며,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결국 정수를 구한 것은 국가가 아닌 가족, 소수 구조대원, 그리고 그의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였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 결론: ‘터널’은 재난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터널>은 단순한 생존 영화나 감정 자극용 장르물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재난 상황 속 시민과 국가의 대응 차이를 날카롭게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책임, 연대,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정수는 절망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려 애쓰고, 국가는 시스템에 갇혀 개인을 놓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위기 속에서 어떤 시민, 어떤 정부가 되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