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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시스템 붕괴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만든 비극의 초상

by 1to3nbs 2025.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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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서울을 덮친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를 중심으로 생존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며, 단순한 재난 영화의 외피를 넘어 인간성과 시스템, 권력과 윤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거대한 자연 재난 이후 무너진 도시 한가운데, 마치 섬처럼 고립된 공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어떻게 질서를 만들고, 무엇을 지키며, 어디까지 타락해 가는지를 지켜봅니다. 특히 국가의 통제력과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졌을 때, 시민 개개인이 보여주는 이기성과 집단 심리는 현실 사회의 위기 대응 체계에 대해 강한 반성을 유도합니다. 본 리뷰에서는 영화 속 붕괴된 재난 대응 시스템, 현실의 매뉴얼과 그것의 한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도덕적 질문까지 다층적으로 분석해 보며,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상상해보고자 합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속 사진

🏚️ 영화 속 재난 시스템의 붕괴 – 무정부 속에서 스스로 질서를 만들다

영화는 지진으로 인해 서울 대부분의 건물이 붕괴된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유일하게 남은 공간은 황궁아파트 한 채뿐이며,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고립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처음엔 외부 구조대가 곧 도착할 것이란 희망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희망은 무력해지고, 정부 시스템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질서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외부인을 차단하고, 생존 물자를 통제하며, 공동체 내의 갈등을 해결할 리더를 세웁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영탁’은 초기에 모두를 대변하는 인간적인 지도자로 보이지만, 권력을 잡으면서 점차 독재적 성향을 드러냅니다. 특히 외부인에 대한 강제 퇴거, 자경단 조직, 집단 처벌 등은 공동체가 생존을 이유로 인간성과 민주주의를 포기해버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재난 이후 새로운 질서’라는 것이 얼마나 빠르게 폭력화되고, 공동체가 자기 방어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게 되는지를 묘사합니다. 이 아파트는 더 이상 단순한 주거지가 아닙니다. 영화 속 황궁아파트는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탄생한 작은 전체주의의 축소판이며, 구조가 사라진 자리에 인간의 본능만이 남았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실이 됩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와, 국가 시스템 없이 공동체가 얼마나 빠르게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드러냅니다.

📋 현실의 재난 시스템 – 수많은 매뉴얼, 그러나 실행은 늘 예외였다

영화가 묘사한 세계는 극단적인 재난 상황이지만, 그 전개 방식은 결코 허구가 아닙니다. 현실의 대한민국도 대형 재난에 대비해 다양한 법적, 행정적 매뉴얼을 갖추고 있습니다. 국가안전처 산하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행정안전부, 지자체 별 재난안전본부 등 다단계 대응 체계가 존재하며, 각종 상황 발생 시 자동으로 위기 단계를 격상하고 기관 간 협조 체계를 가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준비된 시스템의 실패’를 목격한 바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 체계는 사실상 마비되었고, 현장에서는 아무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 포항 지진 당시에도 초기 판단 오류와 대응 지연은 피해를 키웠고, 2022년 이태원 참사에서는 현장 통제가 부재했고 경찰과 행정 기관 모두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스템을 신속하고 실효성 있게 작동시킬 ‘사람’과 ‘훈련’의 부재입니다. 영화 속 황궁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고 법을 정한 것처럼, 현실에서도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사람들은 자력구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가 두려운 이유는, 그 현실이 상상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역시 재난 대응의 형식만 반복하고 본질적 작동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재난이 닥쳤을 때 각자의 아파트, 각자의 동네가 또 다른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될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재난 대비란 물자 비축이나 경보 시스템만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도록 버텨줄 사회적 신뢰망을 세우는 것입니다.

🔍 재난 이후, 우리는 누구를 믿을 것인가 – 영화가 비추는 집단 심리의 붕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시스템의 부재보다 더 두려운 것이 ‘신뢰의 붕괴’임을 강조합니다. 재난 직후, 사람들은 서로를 도우며 생존을 모색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우리는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딪힙니다. 이때 신뢰는 사람에게서 권력으로 이동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결정을 내리지만, 그 판단은 점차 사람보다 구조를, 정의보다 효율을 우선하게 됩니다. 영화 속 영탁은 보호자에서 심판자로 변하고, 공동체는 다수의 폭력이 개인을 제어하는 체제로 전환됩니다. 이 흐름은 전염병, 재난, 정전, 전쟁 등 실재하는 비상상황에서 인간 사회가 얼마나 쉽게 분열과 배제를 선택하게 되는지를 사실적으로 반영합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이러한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초기에는 마스크, 백신을 둘러싼 혼란이 있었고, 특정 지역이나 국적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퍼졌습니다. 재난은 단지 외부로부터 오는 물리적 충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부로부터 신뢰를 붕괴시키고, 질서를 파괴하며, 결국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지녔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 지점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살기 위해’라는 명분은 얼마나 쉽게 다른 이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택이 되는가. 이 영화는 그런 물음을 던지며, 재난이 끝난 후에도 남는 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무너진 건물 위에 남은 사람들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성과 윤리를 저당 잡히고 살아남은 존재들입니다.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과연 무엇을 포기하고 살아남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 결론: 재난은 허구가 아니며, 시스템은 믿을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단지 대지진이라는 재난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정면으로 겨냥한 경고이자, 예고편 없는 위기 앞에서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되묻는 영화입니다. 재난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그 순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개인과 공동체는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영화가 보여준 폐쇄적 공동체, 독재적 리더십, 폭력적인 자경단은 그저 극적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 실제로 마주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화처럼 극한의 상황에 인간성을 내던지는 일이 아니라, 그 상황이 왔을 때도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질문합니다. “국가는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 그 답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쌓는 신뢰와 준비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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